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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이야기, 웹소설 독해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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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4

이 기사의 시리즈 [ 웹소설 독해법 ]

  1. 웹소설 독해법(1) - 웹소설, 재밌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해?
  2. 웹소설 독해법(2) - 웹소설, 그 속도의 미학
  3. 웹소설 독해법(3) - 사이다, 맛을 알기에 더 먹게 되는 맛!


우리는 지금까지 이 기획기사로 웹소설을 어떻게 읽는지 살펴보았다. 일련의 글은 웹소설에 대해서 오해나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웹소설을 쉽게 전달하고 이해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다보니 웹소설의 장르가 어떻고 내용이 어떻고 클리셰가 어떻다는 사전적 정리를 최대한 배제하였다.


‘어떻게 읽느냐’하는 지점을 돌파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질문 하나를 접한다. 우리는 ‘왜’ 웹소설을 읽어야 할까. 웹소설이 이렇게 새로운 독해방법까지 배우면서 읽을 정도로 가치가 있을까.


출판 시장이나 상업적 가능성을 놓고 보면 읽을 가치 여부를 떠나 가장 핫한 대상임이 틀림없다. 드라마부터 영화, 만화를 가로지는 원천 소스의 가능성까지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니까.


그러나 이런 상업적 시각 외에 웹소설이라는 콘텐츠 자체의 가능성을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것은 하위문화라고 불렸던 장르들 전반에게 주어진 굴레이다. 각종 장르 소설들부터 영화도 그러했고 심지어 소설 역시도 한때 시에 밀려 잡문 취급을 받지 않았던가.


그럼 웹소설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이 가능성을 찾기 위해 문학, 그리고 예술의 영역으로 돌아가보자.


흔히 문과/이과 농담을 할 때 이과는 과학적 지식과 수학적 논리 및 계산을 통해 이야기한다면 문과는 ‘문학적 감수성’을 통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그리고 이 ‘문학적 감수성’은 대중들에게 감수성 넘치는 ‘시적인 문구’나 ‘소설 같은 이야기’로 이해되곤 한다.






문학적 감수성이란 결국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다. 특히 근대 이후 소설이 주목했던 것은 ‘나’라는 자아, 그 중에서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아래로 향하는 상상력’이었다.


이것은 비단 문학만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인문철학의 영역들이 결국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 나아가 인간 그 자체에 관한 것이었고 문학은 그 의도에 충실히 봉사한다.


웹소설 또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종이책들과 다른 매체적 특성을 가지고 있을 뿐, 문학이 지향하는 바는 그대로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타자, 그 중에서도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다.


전문가형 소설로 부르는 장르가 있다. 그것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직업영역에서 일인자가 되어가는 소설인데, 이를테면 요리사로서의 성공, 소설 작가로서의 성공, 배우로서의 성공, 매니저로서의 성공, 경매업자로서의 성공, 스타강사로서의 성공 등등을 다루는 소설이다.





이러한 전문가형 소설들은 흔히 미래를 본다거나 게임 스탯이 보인다거나하는 이레귤러적 요소를 통해 일상을 살아가는데, 판타지 소설적인 위험, 그러니까 목숨이 위험하거나 비슷한 능력을 가진 적과 경합을 이루는 구조가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그저 그러한 능력을 가진 것과 별개로 꾸준한 노력을 통해 해당 영역에서 명예와 능력을 성취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상상은 다른 장르소설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상상이 아니다. 


오히려 빠르게 생산, 소비되는 웹소설의 특징인 ‘속도’와 합쳐져서 지금, 여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군상과 시대를 반영하는 기묘한 컬트적 저널리즘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연예계 소설에서는 작가가 알고 있는 각종 연예계 루머들이 이야기되고, 음악 장르에서는 시대를 풍미하는 음악적 지식들이 기록된다. 현재 유행하는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기도 하고, 유명한 학원가 비리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유행하는 요식업이나 게임, 패션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시끌벅적한 페미니즘에 대한 작가 개개인의 관점이 드러나는 소설들도 많다. 국내외 정세에 관련되어 사건에 따른 반일감정이나 중국, 미국의 정세, 그리고 한국의 경제상황을 이야기하는 소설도 있다.


지난 2016년부터 2017년까지의 대한민국은 거대한 스케일의 정치 스캔들로 들썩였다. 200만 명의 시민이 촛불집회를 나섰고 결국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이러한 장면들은 소설 곳곳에서 차용되기도 하고 각종 시니컬한 블랙 코미디들로 변주되기도 한다.


웹소설에는 하루 단위로 빠르게 생산되고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타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소설 속 캐릭터가 살아가는 영역과, 그를 바탕으로 한 세계가 실시간으로 녹아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그렇다보니 약 1년 내외로 연재되는 웹소설은 해당 작품이 연재될 시기를 문화적으로 기록한 중요한 기록물이 된다. 그것은 전문가들의 학문적, 통계적 기록과 다르고 위키처럼 집단 지성들이 기록해 놓는 기록과도 또 다르다.


이렇게 웹소설은 저널리즘의 바깥에서 시대를 기록하는 또 하나의 기록물로서 가치를 획득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시대를 바라보는 창으로서의 기능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다소 확대된 해석일지도 모른다. 필자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이다. 웹소설은 점점 그 크기를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치 백마 탄 초인을 기다리듯 좋은 작품이 웹소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건 막연한 얘기이리라. 


중요한 것은 웹소설이 왜 이 시대에 응답해서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고, 소비되고 있고, 그 크기를 넓혀가는지 상업적인 요소를 뛰어넘는 시대적 의미에 대해서 좀 더 심도 깊게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인식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웹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왜 읽어야 하는지 그 독해법을 알 수 있고, 독해법을 완성할 수 있을 테니까.





마루

웹소설을 읽고, 쓰고,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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