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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액션의 지평 넓힌 '악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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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

(서울=연합뉴스) 정주원 기자 = 액션을 떼어놓고 정병길 감독의 작품 세계를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액션스쿨 출신인 정 감독은 어려서부터 액션에 푹 빠진 '액션키드'였습니다.

장편 '우린 액션배우다'로 입봉해 '내가 살인범이다'로 액션 스릴러에 뛰어들었습니다. 신작 '악녀' 또한 어릴 적의 '소드 액션' 로망을 은막에 옮긴 결과물입니다.

'악녀' 스틸컷[뉴 제공]

오프닝 시퀀스부터 비좁은 복도에서 손과 무기, 시야만 노출해 현란한 액션을 선보입니다. 연기자의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호흡과 움직임의 변화로 액션의 주체와 장소, 처한 상황을 한껏 상상하게 합니다.

시퀀스의 말미에 헬스장 거울에 주인공의 전신이 비치면서 1인칭 액션이 3인칭으로 전환됩니다. 이미 관객의 머릿속에 주인공 숙희(김옥빈)의 인물상이 어느 정도 확립된 시점입니다.

진정한 신스틸러는 배우가 아닌 액션이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얼굴 없는 액션'만으로도 캐릭터의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액션의 영화적 표현을 확장한 느낌을 줍니다.

숙희는 어릴 적 아버지가 눈앞에서 살해당한 후 연변의 조선족 암살자집단에서 킬러로 길러집니다. 집단의 수장 '중상'(신하균)의 사망 후에는 뛰어난 전투력을 인정받아 국가 비밀기관의 암살요원이 됩니다.

기관의 냉혈 여장부 '권숙'(김서형) 부장은 숙희에게 10년만 버티면 평범한 삶을 살게 해준다고 약속합니다. 그렇게 숙희는 밤에는 킬러, 낮에는 연극배우로 이중적인 삶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일견 안정을 찾아가는 듯 보였던 그녀의 삶은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송두리째 흔들리게 됩니다.

'악녀' 스틸컷[뉴 제공]
'악녀' 스틸컷[뉴 제공]

정 감독이 악녀를 두고 '스턴트맨의 피와 땀과 인대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할 만큼 액션의 강도와 스피드의 비중이 큽니다. 여성 원톱 특유의 섹시하고 유연함을 강조한 액션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남자 대 여자의 액션 장면에서도 마치 남자 두 명이 대결하는 것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액션마다 시퀀스의 분량이 상당히 길지만 늘어지지 않고 빠르게 유지돼, 속도감으로부터 나오는 특유의 불안감이 액션에 깊이를 더합니다.

장비가 액션의 속도감을 따라가기 어려워 촬영감독이 와이어에 매달려 촬영하고, 바이크 신에서는 오토바이 바퀴 밑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파격도 강행했다고 합니다.

'악녀' 스틸컷[뉴 제공]
'악녀' 스틸컷[뉴 제공]

사실 시간적 배분으로만 본다면 액션보다는 로맨스와 드라마의 비중이 더 높습니다. 거친 살상 액션으로부터 이어진 로맨스 라인이 의외로 풋풋한 점은 문화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칸 상영 직후 일부 현지 언론이 지적한 '밋밋한 로맨스'는 아마도 베드신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에 비해 드라마의 감정선은 극적입니다.

제목 '악녀'의 반어적 사용도 흥미롭습니다. 제목만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서 김옥빈이 연기한 악녀 '태주'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숙희는 여린 성품이 오히려 킬러 사회에서의 약점으로 작용하는 인물입니다. 숙희의 진실한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연극무대에서 연기한 가련한 여인에 가깝습니다.

'악녀' 스틸컷[뉴 제공]

숙희가 악녀가 되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작품 속 악녀는 비단 숙희 한 명이 아닙니다. 일견 독사 같은 권숙 부장, 라이벌 킬러 김선은 물론이고 킬러 양성소의 모든 여성이 저마다의 이유로 세상의 권력 시스템에 이용당해 '악녀'가 됐습니다.

여성 원톱 액션영화의 시장성을 놓고 관계자들의 우려가 컸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병길 감독은 김옥빈이기에 믿고 짠 액션 합이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여성 액션의 신선함과 완성도가 칸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 것 같습니다. 8일 개봉.

'악녀' 포스터 [뉴 제공]

jwc@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6/03 10:3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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