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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노예, 안토니오 꼬레아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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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0

400여 년 전 임진왜란,


 수 만 명의 조선인 포로가 일본에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당시 세계를 상대로 노예무역을 하던 일본은 나가사키항을 방문한 이탈리아 상인 까를레티에게 5명의 조선인 노예를 단 돈 30엔에 팔았습니다.




조선인 최초, 유럽땅을 밟은 남자


 하지만 네 명의 조선인 노예를 풀어준 까를레티. 그리고 까를레티와 함께하기로 결정한 한 명의 조선인 꼬마는 까를레티의 고향, 피렌체에서 자유민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인 최초로 유럽땅을 밟은 그의 이름은 바로 '안토니오 꼬레아'.




꼬레아 후예들의 마을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수 백년이 지난 이탈리아 남부 알비의 작은 마을, 꼬레아란 성을 가진 꼬레아의 후예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까를레티 견문록이 공개되며 그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흐른 시간이 얼만데, 다른 민족이지!"


 누군가는 그럴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몇 대를 거치며 안타깝게 조상의 모습을 찾을 순 없지만, 한국과 같은 매운 식습관과 대보름과 유사한 풍습은 물론 태극기를 주제로 광장과 탑을 세우며 뿌리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잊혀져 가는 꼬레아 마을 사람들


 그리고 한국과 문화 교류를 하고 싶다고 직접 한국을 찾아온 알비 문화원장, 안토니오 꼬레아. 90년대 잠시 이슈가 되었으나 잠잠해진 여론. 우리나라 예술가들은 이들의 요청을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지속적으로 교류를 위한 작품 준비와 시도들.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경제적 이유로 자신의 활동도 힘든 상황.


 꼬레아 마을의 사람들은 그렇게 잊혀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꼬레아 마을과 예술가들을 위해 이들이 나섰습니다. 더불어 아름답게, 가치있게, 행복하게 여행으로 희망을 나누는 하나투어문화재단. 아티스트가 만든 콘텐츠로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자하는 글로벌엔터. 다양한 장르의 문화 콘텐츠로 따뜻함을 전달하는 리켄티아.


 이들이 힘을 합쳐 꼬레아 마을과의 문화교류 및 국내 예술가들의 해외진출, 전시회장려를 위해 이탈리아 꼬레아 마을 국내 예술가들의 전시 및 퍼포먼스 비용 일체를 지원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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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뿌리를 그리워하는 꼬레아 마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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