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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를 대표하는 만화 - 송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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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1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좋은 작품이란, 독자를 자신이 믿는 정답으로 인도하는 작품이 아닌, 독자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는 필자의 개인적인 기준이다. 이 기준을 빌어 평하자면, [송곳]은 좋은 작품이다. 


  대형마트 푸르미에서 과장으로 일하는 주인공 이수인은 푸르미 내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일에 대항하고자 노무사 구고신과 힘을 합해 노조를 결성한다. 하지만 판타지처럼 잘 풀릴 줄 알았던 미래는 항상 막막할 따름이었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잡음들은 이수인에게 포기를 종용한다. 작품은 주인공 이수인 과장이 노조를 결성하면서 겪는 어려움들을 낱낱히 보여준다. 



  주변 상사들은 이수인을 찍어 누르고 있고 아내와 자식은 가정에 소홀한 주인공에게 섭섭하기만 하다. 노조 활동은 원하는 만큼 잘 풀리지 않고, 대기업인 푸르미는 쓰러질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기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창] 등으로 암울하고 비참한 현실을 주로 다뤄왔던 최규석 작가기에 이런 작품의 전개는 자연스럽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최규석 작가는 6월 항쟁을 그린 [100도 씨]를 통해 강자에게 대항하는 약자의 긍정적인 면모를 그린 바 있었고, 작가 본인의 정치 성향 역시 뚜렷하기에 [송곳]에서 보여주는 적나라한 부조리는 의아하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송곳]의 이수인 과장이 멋지다를 넘어서 이 작품의 연출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앞서서, 만화 [송곳]은 실제로 국내에서 일어났던 한국 까르푸 - 이랜드 파업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당시에 지나치게 가혹했던 한국 까르푸에 대항해 2003년 6월 까르푸 노동자 측은 노조를 결성하여 전면 파업에 이르렀고, 그 뒤로 들어오는 까르푸의 비정규직 노조 가입 제한 등의 압박 속에서도 수차례 시위와 파업을 반복하며 노조를 지켜왔다. 작품 속의 주인공 이수인 과장은 당시 까르푸 홈에버 노동조합의 노동 위원장 김경욱 전 위원장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실제로 김경욱 전 위원장은 이수인과 같이 육군 사관학교 출신이었으며, 외국계 기업에서 간부로 활동하다 노동 운동에 투신하였다. 최규석 작가는 평범한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와 관련 없던 환경에서 살아오다 노동계로 투신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다.



  굳이 이렇게 할 필요는 없다. 어떤 만화든 그렇지만, [송곳]은 굳이 노동위원장을 주인공으로 삼을 필요가 없었다. 2007년 홈에버 대량 해고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 [카트]는 똑같이 김경욱 전 노동위원장이 모티브가 된 인물이 나오지만 이 캐릭터는 조연이며, 주된 이야기는 현장 노동자 출신인 주인공이 이끌어간다. 단순히 노동 현장에 동참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면 [카트]와 같은 방식을 취해도 됐을 것이었다. 하지만 [송곳]은 굳이 처음 노동계에 투신한 사람의 시선으로 까르푸 파업 사건을 다뤘다. 어째서?



그냥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로의 비율이 아니라 실제 세상의 비율을 보여주고 싶었다. 일상이나 뉴스에서 보여주는 비율이 아닌, 우리 세상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힘의 관계나 다양하게 뒤섞인 문제들을 가능한 한 원래 크기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노조는 좋은 거니까 노조를 더 키우자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노조가 저런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 문제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하는구나, 까지는 보여주려는 거다. 노조를 도둑놈이라고 해도 된다. 다만 도둑놈들이 있다면 그들이 왜 저렇게 움직이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나. 산적들 다 때려잡으라고 한다고 화전민이 산적 되는 걸 막을 수는 없지 않나.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4072720277229530


  작가 최규석이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의도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송곳]의 의도를 '노조를 실제 세상의 비율로 보여주기 위해 그린 작품.' 이라고 발언한다.  실제 세상.  단순히 월급을 뜯어내기 위해 무턱대고 파업하고,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도둑이라는 인식이 만연한 노조에 대한 적나라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작품은 노조의 결성 과정부터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생기는 삐걱임, 노조에 받아들일 수 있는 노동자의 한계선에 대한 고민. 그 속에서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사람들로 인한 회의감을 낱낱히 드러낸다. 작품은 사회 전반에 미묘하게 깔려있는 노조의 부정적인 인식 속에 감춰진 노동 조합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단면과 갈등을 만화적으로 가장 절묘하게 드러낼 수 있는 역할은 중간 간부에서 노동계로 투신하여 노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김경욱 전 노동위원장이 맡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 노동 조합 문제를 직면하는 독자와 똑같은 시선에서 사건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주인공은 독자의 몰입을 도와준다.  이 덕분에 처음보는 사건과 제도에 대한 설명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독자들에게 노조 결성에 같이 웃고 우는 가상 노조 체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몰입되는 주인공에게 최규석 작가는 오로지 시련에 시련만 안겨주며 독자들을 계속 흔들리게 한다. 이는 이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노동 조합 활동을 이어가는 이수인 과장을 존경하게 만들려는 작가의 의도일까? 아니면 그저 바람잘 날 없이 힘들었던 실제 사건에 대한 가감없는 고증일까. 필자는 이에 대해 이런 답을 내놓고 싶다. 작품의 핵심을 꿰뚫는 대사 하나를 기억해내보자.


분명 하나쯤 뚫고 나온다. 

가장 앞에서

가장 날카로웠다가

가장 먼저 부서져 버리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만일 우리가 이런 노동조합 문제에 섰을 때, 당신은 이수인 과장 처럼 앞장 서서 노동 조합 문제에 뛰어들 수 있는가? [송곳]은 당시 치열했던 파업 현장에 대한 가감없는 기록임과 동시에,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분명 이 노동 문제에 뛰어드는 순간 우리네 삶은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는 비할 수 없이 어렵고, 고될 것이다. 분명 맨 앞에 선 당신은 화살받이가 되어 가장 먼저 쓰러지고 말 것이고, 당신과 함께했던 사람들만이 웃을지도, 혹은 모두 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장 앞에서 가장 날카로웠다가 가장 먼저 부서져 버리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될 수 있는가?


  가감없는 묘사는 우리네 독자에 대한 도발이자 질문이다. 작품은 우리에게 현실을 던져주며 우리에게 정말 뛰어들 것인지 질문한다.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좋은 작품이란, 독자를 자신이 믿는 정답으로 인도하는 작품이 아닌, 독자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송곳은 단순히 좋은 작품이라 말하기엔 무리가 뒤따른다. [송곳]은 한 사회의 시대상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므르므즈

웹툰작가 지망생. 글 좀 쓰는 편이다. 
자신만의 뚜렷한 관점으로 웹툰을 평가해주는 개성만점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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