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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기본의 무서움 - [투명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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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혼자 살고 있다고 생각한 집에 사실 귀신이 동거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귀신을 쫓아내려고 해보지만 결국 굴복하게 되고,  어찌어찌 친해져서 귀신의 원한을 풀어주게 된다. [귀신이 산다]는 지금 생각해도 여러 면에서 참 재밌는 영화였다. 한 집안에 사는 두 남녀임에도 서로 이어지지 않았고 개그 센스도 탁월했으며 감동도 놓치지 않았다. 결국 귀신이 나온다면 코미디거나 공포물이 된다. 진지한 로맨스물은 왠지 상상하기 힘들다. [사랑과 영혼]을 떠올렸다면 잠시 저 편으로 미뤄놓자. 이야기가 조금 다르니까.

 

 

  모든 창작물의 설정이 그렇지만, 귀신과 사랑에 빠진다면 어떨것 같냐는 물음은  진지하게 고려하기 힘들다. 개인적인 생각을 앞서 말해보자면 산 사람도 못만나는 데 귀신 만날 생각을 왜 해야 할까. 작가는 산 사람을 만난 경험이 지나치게 충만한 인종임이 틀림없다.

 

  주인공 여리는 귀신이 보인다. 이 귀신이 보이는 능력을 통해 귀신들에게 말을 걸며 살았던 적도 있다만 그로 인해 너무 힘들게 살아온 탓에 이제 귀신은 무시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조용히 살고자 이사온 집에도 귀신이 살고 있었으니 불편하디 불편한 동거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죽고나서 3년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해 사람에 굶주려 있던 귀신 '고 준'과 이사갈 형편이 아니다보니 1년은 이 집에 눌러살아야 하는 '소여리'는 서로의 사정에 신경쓰지 않기로 합의하고 동거하게 된다. 이후 작품은 당연하게도 서로 미묘한 방향으로 향하는 감정선을 따라 흘러간다.

 

  감정선, 작품은 감정을 풀어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선보인다. 독자가 원하는 시선에 앵글을 맞춰 이야기를 진행할 줄 알고, 대사를 통해 등장인물의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낼 줄 안다.  특히 과거사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부분들은 대사 하나하나를 심도깊게 짠듯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감정에 대해 '무겁다.'는 한마디로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 가장 알맞은 구도와 대사를 준비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는 [투명한 동거]를 통해 자신이 이 모든게 가능한 작가임을 증명해냈다. 상처많은 과거사가 병풍으로 쓰이기보단, 다시 삶을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탈바꿈한다. 과거를 벗어내는 과정의 격정은 어떤 작품에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이 가장 힘들 때 노골적인 아픔보단 미묘한 시선 처리와 대사를 통해 이 감정을 풀어낸다. 이 작품 속에서 곪아터지는 이야기는 없다.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던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모습은 흡사 가장 힘들 때 떠오르던 단편적인 기억들을 정리하는 모양새 같다. 비극과 상처의 해소에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사 하나를 준비하더라도 작가는 이 장면 하나 하나가 쓰임새가 있다는 듯 수없이 변주한다. 치밀한 작품 설계와 고민이 엿보인다. 작품의 색깔에 맞는 감성과, 그 감성을 이끌어갈 어체의 대화. 그리고 이 모든걸 풀어나가는 컷의 흐름. 스토리 보다 앞서 준비되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다. 이걸 잘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작가는 이걸 밑바탕에 깔아두고 작품을 완성했다. 기반이 단단한 작품은 결코 모래성이 될 수 없다. 작가는 스스로 튼튼한 성의 주인임을 선보인 셈이다.

 

  오랜만에 만난 기분좋은 작품이었다. 대최전부터 눈여겨보던 작가의 멋진 마무리에 박수를 보낸다. 



  

므르므즈
웹툰작가 지망생. 글 좀 쓰는 편이다. 
자신만의 뚜렷한 관점으로 웹툰을 평가해주는 개성만점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