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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과 함께한 마카오·홍콩 여행

등록일2017.12.11 15:07 조회수612

(마카오=연합뉴스) 정동헌 기자 = 거대한 중국 대륙의 남쪽 끝으로 들어간다.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마카오다. 아시아 속에 포르투갈의 어느 작은 도시에 온 것 같은 묘한 풍경을 선물한다. 거리는 하얀 돌을 작게 쪼개어 깔고 검은 돌로 문양을 넣어 율동감 있는 길을 만들었다. 파스텔톤 노란색으로 칠해진 성당, 멜론색의 옛 건물들과 하얀색의 오래된 집들은 고색창연한 하나의 영화 세트장이다. 집집마다 창문 밖 발코니에는 예쁜 꽃들로 장식됐다. 하얀 돌을 밟으며 골목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배가 정박하기 좋은 항구 오문(澳門)을 포르투갈은 동방 선교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마카오 투어 시작은 랜드마크인 성바울 성당이다. '천국에 이르는 문(the Gate to Paradise)'이라 불리는 이 성당은 화재로 건물 한쪽 벽만을 남겨두고 있다. 성당으로 가는 길 입구인 육포거리 가게는 문 앞마다 향을 피운다. 귀신을 쫓고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도교와 토속신앙의 산물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포르투갈 예수회의 성바울성당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정작 자신들은 관운장을 위해 향을 피운다.

마카오 성프란시스코 자비에르 성당의 김대건 신부 조각상

◇ 마카오 곳곳의 김대건 신부 흔적들

모자이크의 흰색 타일처럼 반짝이는 골목을 걷다가 만난 성안토니오 성당은 미사 중이었다. 거의 텅 비어있다시피 한 성당 안에서 대여섯 명의 신자가 성호를 긋는다. 교단 오른쪽으로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영락없는 조선인의 조각상이 있다.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이다. 김대건 신부는 어떻게 이 먼 마카오까지 신학을 공부하러 왔을까. 마카오 시내 곳곳에서 김대건 신부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만다린 하우스로 가는 길을 따라 걷다 남쪽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성로렌스 성당을 만난다. 포르투갈 선원들을 위해 지어진 성당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성당 정문 옆의 배롱나무가 정겹다. 성당 스피커로 나오는 성가는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식민 시절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곳에서 바다를 건너는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입구에는 '주의 사랑은 항상 있다. 복음은 세상 어디나 존재한다'라고 쓰여 있다.

내리는 비를 피해 남핑카페로 들어간다. 마카오에서 제일 오래된 차찬텡(음식과 차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이다.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식당이지만 가게 안은 왁자지껄하다. 테이블 한편에 신문을 펼쳐 들고 읽는 손님이 있다. 자리를 못 잡은 사람은 맞은편 빈자리에 아무 말도 없이 당당하게 합석한다. 중국여행사가 선정한 마카오 조식메뉴 1위 계란샌드위치를 주문해 본다.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빵 메뉴가 발전했다. 마침 지역 방송사 리포터가 가게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보도한다. 이곳도 먹방이 유행인가 보다. 이빨 다 나간 잔에 밀크티가 나온다. 샌드위치 빵도 역시나 모서리가 깨진 접시에 얹어져 있다. 가게에서 일하는 아줌마의 인상이 좋다. 호감 가는 인사말에 빵이 맛있다.

비와 바람이 더 거세진다. 무료 운행하는 호텔셔틀버스는 운행을 중단했다. 마카오 시내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비 맞으며 한참을 걷다가 겨우 세운 택시는 문을 잠근 채 창문만 조금 열어 놓고 행선지를 물어본다. 어디서 많이 보던 행태다. 택시 잡기는 포기했다.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으며 걸어서 숙소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배는 고픈데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았다. 한참을 걷다가 문을 연 식당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무조건 들어간다. 메뉴판을 보니 난감하다. 까막눈이라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딤섬(點心)이 보인다. 3천 년 전부터 중국 광둥지역에서 먹었다는 음식이다. 아는 것이 그것뿐이라 연필로 주문서에 딤섬만 열심히 체크한다.

쫄딱 젖어 호텔에 들어와서는 어떻게 잠을 잤는지도 몰랐다. 다음날 아침 호텔 로비에 놓인 지역 신문을 보고서야 그냥 비바람이 아니라, 20호 태풍 '카눈'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홍콩 앞바다에서 급좌회전하는 태풍이었다. 비행기가 마카오 공항에 도착할 때는 몰랐던 비바람이 태풍과 함께 상륙한 것이었다.

묵지 않더라도 그냥 가서 구경할 만한 마카오 베네시안호텔 로비
마카오 베네시안 호텔 안의 인공운하
프랑스를 테마로 지어진 파리지앵 마카오호텔

◇ 웨딩사진 단골 배경 '마카오 호텔 불빛'

마카오 반도에서 다리를 건너면 별천지인 타이파섬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꿈을 증명하겠다는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이 마카오 타이파섬에 펼쳐진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를 능가하는 불야성을 24시간 볼 수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중국 인민'이란 이미지는 이곳 마카오에서 완전히 잘못된 생각임을 깨닫게 한다.

타이파섬 한복판 랜드마크인 베네시안 호텔은 이탈리아 베네치아 수로를 그대로 호텔로 옮긴 듯 곤돌라를 호텔 안에서 탈 수 있게 만들었다. 온갖 치장을 한 피에로는 여행객의 출신 국가를 알아보고는 나라별 고유 박자에 맞춰 흥을 돋운다. 내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알아채고는 정확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어보니 옆 사람이 아름다운 여성이라 서울에서 온 것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떤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바로 키스 세례를 퍼붓는다.

파리지앵 마카오호텔의 상징인 마카오 에펠탑은 파리 에펠탑을 절반으로 축소해 재현한 것이다. 마카오 모습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호텔 로비는 파리의 어느 호텔보다 화려하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마카오 옛 거리에서 찾기 힘든 화장실이 여기 파리지앵 마카오호텔에선 거의 궁궐 수준이다. 호텔 곳곳에 다른 콘셉트로 만들어진 공간은 뮤직비디오 찍기에 안성맞춤이다. 가수 싸이 '뉴페이스' 뮤직비디오 촬영지가 바로 이곳이다.

젊은 중국 커플의 웨딩사진 촬영 배경은 휘황찬란한 마카오 호텔들의 불빛이다. 오성급 최고 호텔들은 서로 브릿지로 연결되어 이 호텔 카지노에서 저 호텔 카지노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덥고 습한 대륙의 남쪽 지방에서 호텔 밖으로 나가 땀 흘리지 말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카지노 투어를 하라는 주문이 담긴 설계다.

걸어가기 힘든 거리의 공항, 호텔 사이에는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마카오 카지노 안의 분위기는 뜨거운 용광로다. 각 호텔 카지노는 운에 기대어 인생역전을 노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손에 들린 칩들은 행운의 숫자를 찾아 바삐 움직이고, 눈동자도 따라간다.

마카오 타이파섬 조그만 어촌인 콜로안 빌리지를 찾았다. 바닷가 거리의 나무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콜로안의 고즈넉한 풍경은 태풍 속 격한 감정의 여행을 로맨틱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로드 스토우즈 카페 에그타르트는 마카오 최남단까지 찾아온 노력에 최고의 맛으로 보답한다. 겉은 바삭하고, 달콤한 계란 향은 촉촉해 여운이 남는다. 마카오의 맛은 로드 스토우즈의 에그타르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 달달함에 마카오가 달콤해진다.

빨간색 택시는 홍콩의 상징이다.
홍콩에서 가장 빠른 교통수단인 지하철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

◇ 넘치는 속도감에 힘 느껴지는 홍콩

태풍 영향권이라 구름은 속도를 내며 서쪽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터보제트 페리를 타고 태풍 후미 쪽인 홍콩 동쪽으로 이동한다. 홍콩 침사추이행 페리는 마카오를 출발해 구룡반도에 정시 도착했다. 아직 태풍이 다 지나가지 않은 구룡반도다. 구룡반도라는 이름에 얽힌 전설은 흥미롭다. 송나라 시절 폐위된 한 황제가 홍콩으로 쫓겨 내려왔다. 여덟 봉우리를 보고 '팔룡'이라 했는데 아첨하기 좋아하는 한 신하가 팔룡에 그 황제를 더해 구룡이라 한 것이 구룡반도 명칭의 기원이라고 한다.

하버시티에서 만난 출근길의 홍콩인들은 때깔이 다르다. 세련됐다. 비구름이 아직 남아있는 침사추이 해안에서는 홍콩사람들이 또 한 마리의 용이 되고픈 희망을 키우며 셀카사진을 찍는다.

침사추이 해안은 홍콩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는 데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침사추이역 맥도날드 매장에 들어선다. 나란히 놓인 테이블에 노숙자와 직장인들이 나란히 앉아서 서로를 개의치 않고 모닝커피를 마신다. 살림이 가득 실린 카트를 가지런히 세우고 커피를 즐기는 노숙자는 신문에 실린 낱말 맞히기 게임을 한다. 진지한 모습이다. 남루하지만 매너 있는 행동이다. 영화의 한 장면인가 의심했다. 혹시 몰카를 찍는 연출 장면인가 싶어 주위를 살핀다. 비를 많이 맞아 내가 이상해졌나 팔을 꼬집어도 본다. 여긴 홍콩이 맞다. 맥도날드 커피가 맛있다.

홍콩인들의 발걸음은 빠르다. MRT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도 빠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넘어진다. 빨간 홍콩택시는 급하다. 속도감 넘치는 홍콩은 복잡하지만 질서가 있는 홍콩의 힘을 느끼게 한다.

프린스 에드워드역 근처에서 한 홍콩 아줌마가 개에 목줄을 하고 산책한다. 개가 거리를 가다 말고는 길 한가운데서 쭈그려 앉아 오줌을 갈긴다. 주인은 한 손에 들린 페트병을 열어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임에도 자신의 개가 실례한 자리를 물로 씻어 낸다. 지금의 홍콩 수준이 그리 간단히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며 목줄하지 않은 개를 공공장소에 풀어놓는 몰상식한 사회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몽콕시장에서 만난 초로의 홍콩 노동자가 웃통을 훌러덩 벗고는 리어커를 끌고 온다. 쌀포대를 배달 중이다. 태풍 속 빗줄기를 뚫고 가져온 쌀 포대에 묻은 빗방울을 정성껏 닦아낸 후 쌀국수 가게로 옮기기 위해 어깨 위에 짊어진다. 험한 일을 하지만 홍콩인의 자부심을 엿본다.

홍콩의 야경은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한다.

◇ 임청하가 뛰어다닌 청킹맨션

악명 높다는 홍콩 청킹맨션에 발을 디딘다. 험한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 같은 곳으로 소문이 났다. 영화에서도 그랬다. 마약밀매를 하던 금발머리 분장의 임청하가 선글라스를 끼고 청킹맨션에서 도망치는 사내를 잡으러 뛰어다녔다.

홍콩에 왔다면 꼭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청킹맨션에서 금발의 그녀를 만날 수만 있다면 못 들어갈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인도인들과 아랍계 사람들만 보였다. 청킹맨션의 엘리베이터는 격층 운행이다. 격층별로 엘리베이터 입구를 막아 벽으로 만들었다. 홀수층과 짝수층 엘리베이터를 나눠 탄 일행과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비지땀을 흘리다가 상봉했다.

금붕어와 중얼거리며 얘기하는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 '중경삼림'에서 '경찰633 왕조위'가 썼던 작은 아파트 방도 가본다. 귀에는 영화 주제곡인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이 맴돈다. 이 노래의 유효기간은 만년이 넘을 것 같다. 편의점에서 '경찰223 금성무'가 먹었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찾는다. 홍콩섬은 중경삼림이다. 중경삼림에서 표현된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홍콩인들의 심리상태다. 대륙의 중국인들이 태풍처럼 들어오는 홍콩에 계속 있을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영국의 조차지역으로 있다가 중국에 반환된 홍콩 거리를 좌우로 살피면서 걸어가는 홍콩인들은 현재 좌고우면(左顧右眄) 중이다.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를 따지는 조사에서 홍콩이 45위에 올라 58위인 서울을 한참이나 앞섰다는 기사를 봤다. 홍콩 집값이 훨씬 비싸고 복잡하기로는 지구촌 최고인데도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순위에서 서울을 압도한 것이다. 그 까닭이 뭘까? 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라본 홍콩의 화려한 야경 속에 해답이 있는 듯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hotochu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12/11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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