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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심장부 - 파라과이

로고이미지 연합뉴스

2018.09.11

지구 반대편의 땅. 낮과 밤 24시간이 한국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파라과이는 낯설기만 하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파라과이를 찾아 가는 길은 꼬박 이틀을 비행기와 환승 공항에 몸을 맡겨야 하는 고된 여정이다. 하지만 여행을 마칠 때쯤이면 드넓게 펼쳐진 풍경과 매력적인 도시, 그리고 그곳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며 파라과이 친구들에게 말한다.“아스타 루에고!”(Hasta luego, 그럼 또 봅시다)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에서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면 끝없는 지평선과 초원, 나지막한 동산이 반복적으로 펼처진다.



아순시온에서 남쪽으로 373㎞ 떨어진 엥카르나시온은 '남쪽의 진주'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뛰어난 지리적 위치를 자랑한다. 이곳에는 독일, 일본, 우크라이나,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중국, 폴란드, 중동 등지에서 건너온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이 정착해 살고 있다. 특히 2월에 열리는 카니발 퍼레이드가 볼거리다. 


트리니다드 유적의 대광장을 지나면 만나는 교회 유적


엥카르나시온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데 파라나'는 1706년에 지어진 유적지이다. 대광장과 교회, 대학과 수도원, 작업장, 공동묘지, 종루, 가옥, 채소밭 등 당시 도시의 구조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어, 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처음 이곳에는 스페인 예수회 선교사 2명과 과라니족 원주민 4천여 명이살았다. 입구에 들어서면 드넓은 광장이 펼쳐진다. 합동결혼식과 축제 등이 열린 광장 양편으로 과라니족이 사용한 가옥이 폐허로 남아 있다. 



그들은 시민으로서의 자유로운 삶을 살며 선교사들로부터 의술과 초보 수준의 문학, 기술공예 등을 배웠다. 광장을 지나면 선교사들이 공을 들여 세웠던 교회를 만난다. 교회 오른편으로는 선교사 숙소와 교실, 창고 등의 건물이 이어진다. 



트리니다드 유적- 교회 벽면의 목 잘린 석상


트리니다드로부터 10㎞, 엥카르나시온에서 42㎞ 떨어진 헤수스 데 타바란게 정착지 건설은 1768년 예수회가 파라과이에서 추방된 이후 미완성으로 남겨졌다. 



이곳에서도 과라니족의 독립을 지원할 것으로 의심된 선교사들이 스페인 왕에 의해 소환되고, 왕에 의해 파견된 스페인팀을 불신한 과라니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노동력을 잃은 건설현장은 뼈대만 남은 폐허가 되었다. 특히 짓다 만 채 남겨진 거대한 교회가 인상적인 곳이다. 


타바란게의 짓다 만 교회


동물 뼈와 계란 등이 섞인 시멘트 같은 재료를 사용해 만든 외벽은 대부분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대학은 교실 하나만 남아 있으며 대광장과 전통 가옥, 공동묘지와 같은 도시구조의 유적이 남아 있다. 주변으로 펼쳐진 평원과 석양의 아름다움은 유적 속 빨간 벽돌과 어우러져 애잔함을 자아낸다. 


교회 입구


교회 제단벽을 스크린 삼아 상영된 3D 영상(예수회 선교역사)



엥카르나시온시에서 차로 40분 거리의 파라나 강변에 있는 '산투스코스메 으 다미안'의 교회는 1632년 아드리아노 포르모소 신부에 의해 세워졌다. 



지속적인 복원작업이 이루어진 교회는 주변 마을과 지역의 예배 중심지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주말에는 아이들의 주일학교도 운영된다. 교회 안에는 스페인에서 가져온 예수상과 이를 본떠 과라니족이 제작한 예수상, 성자 조각상 등 가톨릭 유품들이 예배당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교회 내부



일학교로 운영되는 교실


예수회 선교사들은  과라니족에게 기독교를 선교하고 노예 사냥꾼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면서 순수한 삶의 공동체를 꿈꾸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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