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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의 ‘개마고원’ 진안고원길 [연합이매진]

등록일2017.03.08 09:20 조회수1383
10여 년간 노력으로 완성…100개 마을 14개 구간에 총 208.2㎞ 

(진안=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북은 개마고원, 남은 진안고원’이라는 말처럼 진안 땅은 높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산이 많고,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물길은 맘껏 굽어진다. 지난해 봄, 10여 년간의 노력 끝에 진안고원길이 완성됐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길이 아니라 사람 왕래가 끊겼던 묵은 길, 잊혔던 옛길, 땔감과 약초 구하러 다니던 산길을 되살려냈다.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의 천왕문 [사진/전수영 기자]

진안군을 한 바퀴 에두르는 진안고원길은 마이산길(12.9㎞), 들녘길(10.2㎞), 내동산 도는 길(17.8㎞), 섬진강 물길(12.4㎞), 고개 너머 마령길(12.3㎞), 전주 가는 길(14.9㎞), 황금폭포 하늘길(17㎞), 운장산 넘는 길(17㎞), 운일암반일암 숲길(8.8㎞), 용담호 보이는 길(15.4㎞), 금강 물길(16.6㎞), 고개 너머 동향길(19.8㎞), 천반산길(16㎞), 진안천 물길(13.4㎞) 등으로 이뤄져 있다. 진안고원길은 14개 구간에 204.5㎞로 고샅길, 논둑길, 밭둑길, 숲길, 물길, 고갯길 등 길목마다 자연의 속살이 숨어 있다. 용담체련공원에서 금강을 따라 감동마을에 이르는 감동벼룻길(3.7㎞)은 정규 코스의 번외편으로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1구간인 ‘마이산길’은 진안읍에서 마이산을 거쳐 마령면에 이르는 고원길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진안의 랜드마크인 마이산과 100여 년 풍상을 견뎌낸 돌탑으로 유명한 탑사, 마을 숲이 풍성한 은천마을이 여행자를 맞아준다. 어디서나 암마이봉(해발 687m)과 수마이봉(681m)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1구간의 총 길이는 12.9㎞로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사양제에서 바라본 마이산

◇ 암수 쌍봉의 마이산과 신비로운 돌탑

1구간 마이산길은 진안읍 내 진안천변에 있는 진안 만남쉼터에서 시작한다. 만남쉼터에서 사양천변을 따라서 걷는다. 갈림길에 설치한 노란색·분홍색 나무화살표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겹 리본이 길을 안내한다. 노랑과 분홍은 진안 특산품인 인삼과 홍삼을 상징하며 노랑은 정방향, 분홍색은 역방향을 가리킨다. 읍내를 벗어나 익산-포항고속도로 밑 굴다리를 지나자 이내 마이산 북부주차장이 나오고 마이산의 기이한 두 봉우리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마이산은 조선 태종이 이 지역을 지나다가 산의 모양새가 ‘말의 귀와 같다’ 해서 마이산(馬耳山)으로 부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신라 시대에는 서대산, 고려 때는 용출산, 그리고 조선 초기에는 속금산으로 불렸다.

같은 산이라도 계절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처럼 보인다고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라 부른다. 착시현상으로 뾰족한 수마이봉이 뭉툭한 암마이봉보다 높아 보인다. 명승 제12호로 지정된 마이산은 프랑스 여행안내서 ‘미슐랭 그린가이드’에서 최고 점수인 별 3개를 받았다.

마이산 관광정보센터와 마이돈농촌테마공원을 지나면 사양제다. 예전에는 물 위에 드리운 두 봉우리의 반영이 사진가들을 매료시켰는데, 지금은 생태공원 조성사업으로부력식 덱(deck) 산책로가 설치돼 있어 저수지 위에 떠 있는 봉우리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사양제에서 보는 마이산은 수풀 속에 몸을 반쯤 감추고 날개를 펼친 한 마리의 나비와도 같았다고 한다.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기에 좋은 '연인의 길'

사양제 둑을 따라 걷다가 다시 도로를 건너면 전기자동차 정류장이다. 이곳에서 마이산 중턱까지 1.5㎞의 오솔길은 ‘연인의 길’로 불린다. 이 길은 연속으로 난 S자 길과 낙엽송·전나무·소나무·산벚나무 같은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다. 숲길을 따라가는 길은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기에 좋고, 정답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상쾌한 기운이 온몸에 퍼진다. 가을에는 단풍나무가 숲 터널을 만들어내는 ‘환상의 길’을 연출한다. 마이산에 오르는 오르막길 계단을 불편해하는 관광객들은 전기자동차를 이용하는데 편도 3천 원이다.

마이산 북사부면이기 때문에 눈이 녹지 않은 연인의 길을 지나면 사양제에서 계단을 따라 곧장 올라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곳에서 가파른 계단에 올라서면 천왕문이다.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을 가로지르는 이곳은 은수사와 탑사로 통하는 관문이라 건물이 없어도 천왕문이라 불린다. 이곳은 ‘산태극 수태극’의 명당으로도 이름이 높다. 마이산은 백두대간이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위치해 있다. 북쪽의 금강과 남쪽의 섬진강 두 물줄기가 마이산을 중심으로 태극을 이룬다.

천왕문에서 수마이봉으로 150m 오르면 기도처인 화엄굴이다. 워낙 가팔라서 오를 수 없는 수마이봉과 달리 뭉툭한 암마이봉(3월 15일까지 입산통제)은 정상까지 사람의 발길을 받아들인다. 정상까지 600m의 등산로에는 목재계단을 깔아 오르기 편하다. 정상에 닿으면 '한눈에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게 멀고 넓다'는 뜻인 일망무애(一望無涯)란 말이 바로 이곳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주변의 산봉우리와 진안고원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수마이봉을 등지고 있는 은수사

천왕문에서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 가파른 골짜기를 따라 324개 계단을 내려서면 은수사인데 마이산은 또 다른 느낌으로 탐방객을 놀라게 한다. 마이산을 가까이에서 보면 마치 자갈과 시멘트를 비벼 산을 쌓아올린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마이산을 콘크리트축조물로 착각한 한 외국인이 이 산을 쌓을 수 있는 기술은 물론이고 이 엄청난 물량의 시멘트를 어떻게 충당했느냐며 혀를 내둘렀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1억 년 전 마이산은 호수였다.

그 바닥이 솟아올라 지금의 봉우리가 됐다. 자갈이 진흙이나 모래에 섞여 굳어진 퇴적암인 역암이 거대한 두 개의 덩어리를 이루어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이 됐다. 암마이봉 절벽을 보면 곳곳에 크고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타포니(taffoni·풍화혈)라고 불리는 이 구멍들은 역암에서 자갈 사이를 메우고 있는 물질인 매트릭스가 자갈보다 빨리 풍화되는 차별침식으로 자갈이 빠져나가면서 생겼다. 타포니는 ‘벌집 모양의 자연동굴’을 지칭하는 프랑스 코르시카 섬의 방언으로 세계적으로 진귀한 지질 현상이다. 진안군은 마이산 일대의 지질학적인 특수성을 들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추진하고 있다.

수마이봉을 등지고 있는 천년고찰 ‘은수사’는 태조 이성계가 왕조의 꿈을 꾸며 기도 하던 중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해서 은수사(銀水寺)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한다. 은수사 앞마당의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호)는 몸통이 네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나이는 600여 년으로 추정된다. 겨울에 청실배나무 아래 정화수를 떠놓으면 고드름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기이한 현상도 나타난다. 수직 혹은 사선 방향으로 길이 20∼30㎝의 역고드름이 솟는다. 사람들은 이를 심령의 발로라고 하지만 일종의 대류현상이 빚어내는 신비로운 자연의 조화다.

크기도 높이도 다른 80여 개의 돌탑

은수사에서 300m 내려가면 탑사가 나온다. 매표소에서 문화재관람료(3천원)를 내고 비탈길을 내려가면 크기도 높이도 다른 80여 개의 돌탑이 사람들의 넋을 잃게 한다. 마이산이 자연이 만들어 낸 걸작이라면 돌탑들은 사람이 만들어 낸 걸작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주탑인 천지탑은 골짜기 가장 위쪽에 자리잡아 아래의 모든 탑을 호령하는 듯이 서 있고 오방탑·약사탑·월광탑·일광탑 등 크고 작은 탑들이 도열해 있다.

어지럽게 돌무더기가 놓여 있는 것 같지만 돌을 마치 송곳처럼 정교하게 차곡차곡 쌓아 폭풍이 몰아쳐도 약간 흔들릴 뿐 무너지지 않는다. 돌탑은 이갑룡(1860~1957) 처사가 천지음양의 이치와 팔진도법을 응용해 108기를 쌓았다고 하나 지금은 80개쯤만 남아 있다. 골짜기를 빼곡하게 채운 신비한 탑들과 함께 암마이봉 절벽 위를 오르는 능소화와 타포니 속의 작은 돌탑도 신비감을 더해준다. 기묘한 산의 모양에 탑사 돌탑들이 신비감을 더해줌으로써 마이산은 연간 100만 명이 찾는다.

탑사에서 금당사 쪽으로 내려가지 말고 상가 옆길을 따라 산길로 들어선다. 예부터 고개를 넘나드는 마을 사람들의 정감이 깃들어 있는 옛길이다. 포근한 산길을 걷다 보면 탑재로 불리는 쉼터가 나오고, 여기서 1.5㎞의 사자골을 내려가면 은천마을에 닿는다. 은천마을 앞 천변에는 울창한 마을숲이 조성돼 있다. 마을숲에는 느티나무, 팽나무, 개서어나무 등이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마을 앞으로 도로가 개설되면서 숲과 마을로 구분됐다.

원동촌마을의 양곡정비소

마을 앞 은천천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 도로를 걷다 보면 첩첩산중의 고원 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친다. 마이산 남부주차장과 금당사로 가는 갈림길인 화전삼거리를 지나 논 사이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간다. 오른쪽으로 맑은 은천천이 흐른다. 중동촌마을에서 구들장 채석장, 원동촌마을의 양곡정미소, 은천천 절벽 위에 자리한 형남정을 지나면 마령사거리다. 진안은 평지가 높이 300m로,

이곳은 진안군에서 제일 넓고 기름진 평지를 이루고 있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사거리에서 400m 정도를 가면 1구간 종착점이자 2구간 시발점인 마령면사무소가 나타난다. 마령사거리에서 버스를 타면 진안 만남쉼터로 되돌아갈 수 있는데 진안읍과 마령을 오가는 버스는 하루 18편이나 된다. 정병귀 진안고원길 사무국장은 “이 길에는 개발이 덜 된 농촌과 산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며“청정한 공기를 마시며 때가 묻지 않은 풍경을 만나고 사색하기에 참 좋은 길”이라고 말한다.

갈거계곡을 따라 점점이 박혀 있는 숲속의 집

◇운장산 자연휴양림, 계곡 따라 숲 속 걷는 맛이 일품

진안의 운장산 갈거계곡에 자리 잡은 운장산 휴양림은 계곡과 숲이 어우러져 가족 단위 휴양지로 안성맞춤이다. 진안읍에서 용담댐 주천 방면으로 2㎞쯤 달리면 갈거마을이 나타난다. 휴양림 표지판을 보고 왼쪽으로 돌아 갈거계곡을 따라가면 관리사무소에 닿는다. 운장산이 품고 있는 7㎞에 달하는 갈거계곡은 물속 자갈 하나, 물에 잠긴 나뭇잎까지 다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언 계곡 틈새로 흐르는 맑은 물과 눈 덮인 바위, 울창한 원시림이 여느 계곡에선 찾아보기 드문 비경을 연출한다. 계곡을 따라 마당바위, 학의소, 정밀폭포 등 비경들이 숨어 있다.

숲속의 집과 산림문화휴양관, 숲속 수련장 등 숙박시설은 갈거계곡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통나무집이 자연경관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 속에 점점이 박혀 있어 호젓하게 숲을 누릴 수 있다. 계곡의 원시림을 헤치고 흘러내리는 옥류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운장교와 구봉교 사이의 마당바위를 만난다. 어른 10여 명이 누워도 넉넉한 바위 위를 흘러가는 옥류는 온갖 세상 시름을 잊게 한다. 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마련돼 있다. 구봉교를 지나면 휴양림 맨 위쪽에 위치한 야영장이다. 계곡을 바로 옆에 끼고 있어 ‘오지캠핑’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주차장과 화장실, 개수대도 50m 내에 있다. 비교적 너른 덱(deck)이어서 큰 텐트까지 칠 수 있다. 20개 야영덱 중 102번과 103번이 계곡 바로 옆에 자리 잡고, 간격은 가장 넓다.

야영장 옆 임도를 따라 6km를 오르면 복두봉(1,017m)에 다다른다. 여기서 500m가량을 오르면 투명한 물이 연못처럼 펼쳐지는 학의소를 만나게 된다. 2단으로 흘러내려 장관을 연출하는 정밀폭포는 그다음으로 펼쳐지는 비경이다. 북두봉에 서면 운장산과 9개의 기암으로 이루어진 구봉산 등이 눈 아래 펼쳐진다. 이 코스는 산불 주의 기간인 봄철(2월 1일~5월 15일)과 가을철(11월 1일~12월 15일)에는 입산이 통제돼 이용할 수 없다. 관리사무소에서 숲속 수련장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는 가벼운 트레킹에 안성맞춤이다. 길을 걷는 내내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changho@yna.co.kr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3월호 [걷고 싶은 길]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3/08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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